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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월간山 칼럼] 산악인 표지(標識) 브랜드....<펌>

by 날라리 산행이야기 2006. 11. 18.
 
[월간山 칼럼] 산악인 표지(標識) 브랜드
[월간 산 2005-05-09 18:00]

요즈음 등산의류 시장을 보면 수많은 브랜드들의 백가쟁명 시대에 든 느낌이다. 과거엔 듣지도 못했던 새로운 외국 브랜드들이 속속 선뵈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유명 등산브랜드들은 거의 모두 수입되고 있다고 할 정도다.

과거 산악인들 간에는 나와 동류의 전문 꾼인지를 가리는, 이를테면 표지(標識) 브랜드가 있었다. 상대방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의 틀림없이 자신과 같은 전문 꾼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던 그런 브랜드다.

10여 년 전의 노스페이스가 한 예다. 당시 노스페이스는 암벽등반을 주로 하는 전문 산악인들만 애용하던 브랜드여서, 전철 안에서 누군가 노스페이스 상표가 붙은 재킷이나 파카를 입고 있으면 옆에 다가가, ‘혹시 산에서 보았던 산친구는 아닌가’ 하고 살피기도 했다. 지금의 노스페이스 브랜드는 완전히 대중화됐으며, 때문에 그런 표지 기능을 잃은지도 오래다. 물론 대중화하며 노스페이스의 판매 수익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늘었으니, 브랜드 수입상 입장에선 별 아쉬울 것이 없을 터다.

산중의 많은 등산객들 가운데에서는 몇몇 외제 배낭도 일종의 전문 산꾼 표지로 기능했다. 밀레나 캐리모어, 로우 브랜드의 배낭이 특히 그러했다. 이들 브랜드 배낭을 멘 사람들 간에도 일종의 동류의식 같은 것이 작용했다.

30여 년 전에는 클레터슈즈가 또한 확실한 암벽꾼의 표지였다. 누런 세무 가죽을 이중으로 덧댄 한편 마찰력이 좋은 고무창을 부착한 ‘미성 크레타’나 ‘송림 크레타’를 신은 사람은 거의 틀림없는 암벽꾼이었다.

등산화는 파이브텐의 경우가 인상적이다. 과거 암벽루트의 난이도 중 최고난도였던 5.10급을 오를 수 있는 암벽화로 어필하고자 파이브텐이라 이름한 미국 브랜드인데, 80년대 후반 수입된 직후부터 표지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한동안은 파이브텐 리지화를 신은 사람은 곧 암릉이나 암벽 전문꾼으로 간주해도 좋았다. 나중엔 암릉 종주꾼들 사이에서 이 파이브텐 리지등산화를 신지 않은 사람은 아직 뭘 모르는 초보자, 혹은 도보산행파로 무시당할 정도였다.

표지 브랜드의 사용자는 곧 고수나 전문가를 의미했기에 초보자 티를 벗으려거나 전문 꾼 그룹으로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이 표지 브랜드 재킷이나 등산화 등속을 구입했다. 결국 이들 표지 브랜드 중 상당수는 나중에 크게 유행하는 대중 브랜드가 ?다. 성장속도도 매우 빨라서 기존 일반 브랜드들의 매출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사람들이 전문가 그룹이 애용하는 제품은 그만큼 품질이 뛰어날 것이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표지 브랜드들은 품질이나 기능이 좋은 편이었다. 노스페이스 같은 경우는 여기에 좀더 적극적으로, 8,000m급 14개봉 완등자인 박영석씨 등 전문가를 광고 모델로 활용해 크게 성공했다. 요즈음 트렉스타가 엄홍길을, 밀레 브랜드가 한왕용을 모델로 채용한 것도 물론 같은 효과를 노려서다.

산악인들은 전문가임이 은근히 드러날 수 있는, 혹은 저희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표지로서 새로운 브랜드를 애써 찾으려는 경향조차도 보인다. 노스페이스가 대중화한 이후, 기능이나 품질 상 노스페이스 같은 기존 유명 브랜드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마운틴하드웨어와 아크테릭스라는 새로운 브랜드 의류가 전문꾼들 사이에 유행한 사실에 비추어보아 거의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데미안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표지를 가진 특별한 부류의 사람이다. 그 표지는 ‘자기 내면에 몰두하는 자, 혹은 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껍질로서의 세계를 파괴하려는 자들’만이 서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산악인들은 데미안적인가. 아니면 표면적으로만, 브랜드에서만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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