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스크랩] mba 유학정보[펌]

by 날라리 산행이야기 2006. 11. 9.

MBA유학정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있는 내용이다.

토플, 쥐멧, 에세이를 비롯한 어플라이부터 시작해서 학교에 대한 네임밸류 및 향후의 진로에 대해서도 학생 및 지원자의 입장에서 잘 쓴 글이다. 많이 길긴 하지만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유용한 글이 될듯....

 

---------------------------------------------------------------------------------------

 

 

박 진 철
Class of 1995

Columbia University

 

내 꿈은 세계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경영대학원이나 국제 관련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세계적인 기업이나 기구에 진출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가 공공 부문 쪽으로 어떠한 경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MBA 과정은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확신했다.

많은 비즈니스 스쿨 가운데서 지원할 만한 학교를 추려 보는 것으로 지원 준비를 시작했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필요 사항에 따라 학교 위치, 동문들의 취업 분포, 학문적 명성, 기업 채용 담당자의 선호도 등을 따져 봤고 그 외 학생 구성이나 한국 학생 비율, 전체 학생 수, 비즈니스 스쿨의 역사 등

도 고려했다.

비즈니스 스쿨은 어느 정도 지역적인 특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학교 위치는 상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나 텍사스주 소재의 학교들은 주위에 반도체나 컴퓨터와 같은 첨단 기술 업체가 모여 있어 상대적으로 그쪽 분야로 진출할 기회가 많다. 또 디트로이트 근교에 위치한 비즈니스 스쿨의 학생들은 자동차 산업 같은 제조 업체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뉴욕 부근에 위치한 학교의 학생들은 특히 금융 업계로 진출할 기회가 많다. 당시 금융 쪽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자연히 뉴욕 부근의 학교에 주안점을 두었고 컬럼비아 대학의 MBA 과정에 입학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관련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시험이나 서류 전형을 통해 과목을 면제해 주고 있다. 나는 대학 때 생산 관리(Operation Management)와 유사한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어 생산 관리 과목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첫 두 학기 수업은 '클루스터(Cluster)'라고 불리는 학생 50~60명으로 구성된 한 그룹이 다시 5, 6명씩 여러 스터디 그룹으로 나뉘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컬럼비아 대학 학제의 가장 큰 특징은 여름 학기가 가을이나 봄 학기와 기간(trimester)이 똑같다는 점이다. 입학 당시 의욕에 넘쳤던 나는 이러한 컬럼비아 대학의 학제를 잘 살려 2년짜리 석사 과정 두 개를 묶어 3년에 석사 학위 2개를 받는 조인트 프로그램(Joint Program)에 지원했다.

그러나 국제 관계 대학원과 경영대학원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나의 욕심은 지나쳤는지 결국 한 학기만에 손을 들고 1994년 봄 학기부터 경영대학원만 다니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남들보다 한 학기가 늦어져 서머 인턴은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여름 학기 까지 계속 수업을 받아야 했다. 네 학기를 연속으로 수강한 결과 입학한 지 17개월 만인 95년 5월에 경영대학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MBA 2학년 때부터 투자 은행이나 금융 기관 혹은 컨설팅 관련 회사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학교에 찾아오는 여러 회사와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95년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금융 기관의 상태가 좋지 못해 금융계에 취직하기는 전반적으로어려운 편이었다. 이에 비해 컨설팅 업계는 상대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어쨌든 뉴욕에서 발을 내딛고 싶다는 나의 꿈을 이루어졌다. 뉴욕의 메릴린치(Merrill Lynch) 신흥 시장 채권 조사부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시 그 부서는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단시일 내에 이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급부상하였다.

그러던 중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MBA 2학년 때 인터뷰했던 프랑스의 엥도수에즈 은행(Credit Agricole Indosuez) 홍콩 지점 채권부로부터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그 은행은 미국계 투자 은행인 레만 브라더스로부터 채권부의 핵심 멤버들을 대거 영입, 기존의 팀 멤버들과 더불어 아시아의 채권 분야 업무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리서치에서 마켓 쪽으로 이동을 고려하고 있던 나는 괜찮은 기회라 생각하고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채권팀 팀장(Head Trader)과의 마찰로 나는 또 한 번의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고, 컬럼비아 대학 선배의 제의로 영국계 투자 은행인 자댕 프레밍 자본 시장부의 채권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1998년 5월 홍콩 소재의 부티크 회사인 킴바코(KIMBACO)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 비즈니스 스쿨에서 보낸 MBA 과정은 현재까지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때와 짧은 시일 안에 목표를 획득한 과정에도 MBA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이수했던 금융관련 과목들은 현재의 업무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MBA 과정을 시작하기 전 나에게 부족했던 국제 금융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채워 주었다.

MBA를 준비할 때는 일단 학교에 입학하는 것만을 목표르 삼기 쉽다. 그러나 MBA 과정 입학은 끝이 아니고 오히려 시작이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또 같은 학교에 다니더라도 모두 동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똑같은 학교에서 같은 과정을 밟아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에 따라 실력은 차이가 난다. MBA 과정은 자신의 미래를 분명히 그린 사람에게만 확실한 도움을 준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리고 행하는 과정이다. 이는 MBA 과정이 궁극적으로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늘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말이다.


 

홍 종 화
Class of 2000 Admission

IMD

 

처음 MBA를 지원하려고 계획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계 한국인(Korean-American)이라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배경을 활용하고 유럽의 역사적인 경제 통합 시점에 발맞추기 위해 유럽에 있는 상위 학교들을 물색하였고, 결국 영국의 LBS, 프랑스의 INSEAD, 그리고 스위스의 IMD 세 학교로 압축하였다. 실제로 이들 학교는 미국에 있는 상위 랭킹의 비즈니스 스쿨과는 학풍이나 커리큘럼의 성격이 상당히 달라 유럽 대 미국 혹은 유럽 대 유럽이라는 상대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결국 IMD를 선택했는데, 그 선택에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IMD의 독특한 학습 방식이다. IMD의 학습 방식은 내가 아는 한 어떤 비스니스 스쿨보다 혁신적이고 엄격하며, 비즈니스 현장의 요구에 부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미국인들과는 대조적으로 한 비스니스맨을 평가할 때 학위보다는 경험과 경륜을 더 따지는 경향이 있다. IMD의 커리큘럼은 바로 이러한 유럽인들의 성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지원자들의 평균 직장 경력은 5~7년으로 미국의 3~5년보다 높다. 더불어 지원자들의 평균 연령도 약 30세로 미국보다 두세 살 정도 많다. 내가 만나 본 몇 명의 IMD 출신 경영 컨설턴트들도 현장 중심과 경험을 상당히 중요시하였으며, 대단히 활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유럽인들의 IMD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는 점이다. 내가 만난 많은 유럽인 중에 IMD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들 중에는 IMD를 'Global Harvard'로 평가한 사람도 있었다. 특히 IMD는 매년 60~80명만 뽑는 MBA 프로그램보다는 유럽의 많은 최고 경영자를 대상으로 하는 단기 과정 프로그램으로 더 유명하며, 실제로 1년에 수만 명의 톱 매니저들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지도급 경영자들에게 IMD는 좋은 이미지로 자리잡혀 있다.

마지막으로 IMD의 비용 효과(cost-effectiveness)이다. 졸업 후 예상 연봉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IMD가 지향하는 소수 정예의 경험 많은 글로벌 비즈니스 경영자 배출 전략의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IMD를 포기했다. 포기한 이유에 대한 좀더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IMD의 단점을 말하고 싶다.

먼저 동문회 네트워크가 너무 작아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IMD에 대한 선호도를 저하 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활동 영역으로 하고 싶은 나에게는 큰 고민거리였다. 결국 나는 아직까지는 전 세계 경제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 내에서의 IMD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로 IMD를 포기하게 되었다.

두 번째 단점은 진로 전환이 어렵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1년 동안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미 졸업 후의 진로가 확정된 상태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다른 학교보다 높다. 한 예로 IMD의 에세이 질문 중에는 '어떤 산업체에서 어떤 직급으로 일하고 싶은가'라는 졸업 후의 구체적인 예상 진로에 대해서 묻는 항목이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IMD를 추천하고 싶다.

유럽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사람
직장 경험이 풍부하고 단기에 MBA의 모든 효과를 얻기를 원하는 사람
진로가 뚜렷한 사람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거나 그러한 감각이 필요한 사람
GMAT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아도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뛰어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

 

내가 알기로는 60~80명의 입학생 가운데 IMD가 매년 한국에 배정하는 학생 수는 1~3명이다. 따라서 한국 사람이 IMD에 입학 허가를 받는 일은 미국의 톱 10 스쿨 5위안에 드는 학교만큼이나 어렵다고 하겠다. 나는 졸업 후에 진로가 확실한 사람들, 혹은 5년 이상의 직장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 프로젝트 경험이 많거나 이미 과장 이상의 직급을 가진 사람들에게 IMD를 권하고 싶다. 또한 IMD는 컨설팅이나 금융 분야보다는 제조업이나 기존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 조심스런 조언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전체적인 학교 성향이나 교수진의 관심 분야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치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텨뷰나 학교 안내 책자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들의 반 이상이 유럽인이므로 앞으로 유럽 시장 진출을 꿈꾸는 매니저들에게 IMD 졸업장은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IMD의 경쟁률은 10 대 1 정도로, 미국 톱 10 비즈니스 스쿨 수준이다. 일단 인터뷰를 하면 경쟁률은 거의 3 대 1 이하로 줄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나의 경우는 e-mail을 통해 합격 통보를 받았다. IMD는 1월부터 9월까지 모두 아홉 번에 나누어 원서를 받는다. 물론 원서 접수 기간이 끝난 다음에도 1월 15일, 3월 1일, 4월 1일, 5월 1일, 6월 1일, 8월 1일 그리고 9월 1일에 원서를 접수할 수 있다. IMD에서는 TOEFL 점수를 요구하지 않으며 GMAT나 GPA도 최저 점수(Minimum Score)가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의 톱 10 스쿨 수준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인터뷰는 필수이며 초청 인터뷰 형식이다. IMD의 에세이 문항들은 하버드의 그것과 비슷하며, 독특한 점은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상당히 깊숙하게 논의된다는 점이다.

공식 자료는 없으나 GMAT는 650점 이상, GPA는 3.5이상으로 미국의 톱 10 스쿨 수준이다. TOEFL 점수는 요구하지 않는다. 직장 경력은 3~5년 이상으로 평균 7년이다. 학비는 개인인 경우는 3만 9천 스위스프랑, 회사가 지원하는 경우는 5만 9천 스위스프랑이다.
아래에 IMD에서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을 열거해 놓았다.

 

1. Significiant work experince: WIth some experience of management and showing
a fast regular profression of responsibility
an ability to take broader reponsibilities
a personal/professional maturity
a potential for senior management position
2. A solid academic background
3. International exposure
4. A good GMAT score
5. Ability to speak a language other than English is advantageous

 

나는 지워하고 한 달 후에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통보받았으며, 업무차 동북 아시아를 방문한 IMD의 국제 경제·정치학 교수와 서울 조선호텔에서 약 1시간 반에 걸쳐 인터뷰를 하였다. IMD는 전체 입학 허가 결정 과정에서 인터뷰가 차지하는 비중이 예상보다 컸다. 인터뷰 때 질문의 수준도 다른 학교들보다 높았으며 시간도 길다. 때문에 자기 분야에 대해서 상당히 심도 깊게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내가 받은 질문은 아래와 같다.

왜 IMF가 생겼는가?
한국에서 재벌 기업이 한국 경제에 끼친 영향은? 그리고 이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현 IMF의 타개책은 무엇인가?
한국 경제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체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며 왜 그 일을 하고 있는가?

 

대답을 할 때는 자신의 직장 경험에 중점을 두면서 국제 프로젝트나 활동 경험을 부각시켜야 한다. 나를 인터뷰한 IMD 교수는 나를 면접한 다른 어느 학교(시카고대와 하버드대)의 인터뷰어보다 경험과 연륜에서 뛰어났다. 그의 질문들은 직장 경험이나 그 방면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IMD의 커리큘럼은 마치 경영 전략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하듯 짜여 있다. 특히 국제 컨설팅 프로젝트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팀을 이루어 8주간 풀 타임으로 전 세계에 있는 특정 회사를 선정하여 매니지먼트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다. 이 교과 과정은 8월에서 12월 사이에 있으며, 정규 과정이나 선택 과정과 병행하여 진행된다. IMD의 커리큘럼은 크게 8개의 단위로 나뉘어 있으며 한 단위당 6주 정도를 할애한다.


IMD 졸업생들은 11개월 과정인 IMD의 집중적인 커리큘럼은 2년 과정인 미국 MBA 프로그램 내용의 85% 이상을 커버한다고 말한다. 차이가 있다면 IMD는 학생들이 원하는 코스, 즉 선택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IMD가 향후 진로에 대해 확신이 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박 상 길
Class of 1998  University of California-Los Angeles(Anderson)


환은선물 근무

 

누구나 그렇듯이 유학을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최종 목표로 삼는다. '더 낫다'의 대상은 지적 호기심 충족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 좋은 직업, 혹은 돈과 명예일 수도 있다. MBA 과정은 이런 것들에 한발짝 다가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학교 선택은 신중히 생각해야 하는 문제이다.


나도 그랬듯 MBA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이 학교 선택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학교 선택에 있어서도 편견과 고정 관념의 틀을 깨지 못하고 그 범주 안에서만 사고한다. 예를 들자면 의사, 변호사 등 '사'자에 유난히 집착한다던가 하버드 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점차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어, 그러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왜 앤더슨 스쿨을 선택했는디, 그리고 그 선택이 최고였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지를...


내가 유학을 가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월가'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유학을 가기 전에 월스트리트에 있는 회사의 하나인 C.S.First Boston 서울 지점에서 일했다. 그 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더 먼 장래를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학교를 선택할 때 실제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였다. 내가 학교를 결정할 때 고려했던 점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의 위치다. 학교가 대도시 안에 위치해 있으면 유리한 점이 많다. 취업을 위해서는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수업은 수업대로 진행이 되므로 인터뷰는 남는 시간을 활요해 해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2·3차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2차 인터뷰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워싱턴,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LA 등 대도시를 순회하며 그 지역의 학교나 인접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인터뷰하기 때문에 학교가 대도시에 위치해 있으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의 땅이 워낙 넓어서 대도시에 인접해 있다고 해도 비행기를 이용해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앤더슨 스쿨은 LA에 위치해 있으므로 각 회사들이 빠짐없이 거쳐간다. 뿐만 아니라 LA의 다운타운에는 수많은 펀드 회사들이 있어 나는 그 곳과의 인터뷰 기회도 상당히 얻을 수 있었다.


둘째, '나와 경쟁할 상대가 얼마만큼 있는가?' 이다. MBA 과정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좋은 직장을 얻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최종 직장을 잘 잡기 위해서는 한 학년이 끝나는 여름 동안 한 서머 잡(Summer Job)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머 잡도 경력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서머 잡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하버드에서 1명, 시카고대에서 1명, 컬럼비아대에서 1명처럼 학교나 지역별로 인원을 정해서 뽑기 때문에 서머 잡 인터뷰시 한 학교 학생들끼리 경쟁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앤더슨 스쿨은 유리하다. 왜냐하면 매년 앤더슨 스쿨에서 한국 학생들은 겨우 한두 명에 불과하고 교포 또한 이와 비슷한 정도밖에 없어 전체적으로 서너 명뿐이므로 그만큼 유리하다.


셋째, '내가 어느 공부에 치중할 것이며 그 학교의 분위기는 어떠한가?'이다. 참고로 앤더슨 스쿨은 재정·금융(Finance) 분야가 강하며 그 분야를 공부하기에는 어느 학교보다 얻는 것이 많다. 학교 분위기는 LA의 날씨처럼 밝다. 학생들은 주로 백인이고 흑인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 시설이 새 것이라 전체적으로 깨끗하다. 게다가 최첨단 컴퓨터가 강의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강의를 위해 교실을 옮겨다녀야 하는 불편한 일이 없고, 버스 노선 또한 아주 다양해 차가 없어도 학교를 통학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이상이 내가 앤더슨 스쿨을 선택한 이유이다.
앞서 말했듯 편견과 고정된 관념에 사로잡혀 학교를 선택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결정하여 이끌어가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이 글이 MBA 과정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현재 나는 런던에 있는 투자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앤더슨 스쿨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나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자부한다.

 

 

유 식
Class of 1995 New York University (Stern)

금호그룹 비전경영팀 근무

 

금호그룹에서 해외 유학 사원으로 선발되어 가장 먼저 입학 허가를 받은 곳이 바로 NYU였다. 입학 허가를 받고 별 망설임 없이 뉴욕행을 결심한 나는 JFK 공항에 내려 맨해튼에 들르지 않고 바로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공항 인근의 플로싱으로 가 그곳에 정착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까 우선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살자는 우스운 결정이었다. 1993년 8월, 난생 처음인 도시에서 며칠을 헤매다니며 겨우 살 집을 마련하고, 관광 지도를 보고는 몇 시간을 연구한 끝에 학교를 찾아갈 수 있었다. 캠퍼스는 없이 길거리 건물마다 나부끼는 눈부신 보라색 NYU 교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뉴욕에서의 배움은 독특한 향기가 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몇몇 잡지에 학교별 MBA 랭킹이 발표되지만, NYU는 그 중 13, 14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금융·재정(Finance)'과 'International Business' 분야는 항상 최상위이다. 이것은 뉴욕이라는 삶의 터전이 주는 특별한 학습 환경의 산물일 것이다.


NYU는 월스트리트와 5분 거리에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서 생산되는 최고의 정보들이 그야말로 'Just in time'에 제공되고 있다. 또한 NYU는 월스트리트가 세계 금융을 지배할 수 있는 이론적인 힘을 제공하면서 실물과 이론이 한 공간에서 뒤섞이고 발전적 해체를 거듭하면서 살아 있는 학문을 만들어 나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저녁에 열리는 파트 타임 학생들과의 수업 시간에는 낮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실무로 훈련된 최고 정예 금융인들과의 정보 교환과 토론이 이루어진다. 명성을 자랑하는 NYU의 교수진들은 실제로 투자 은행이나 선물 거래소에서 실무를 경험한 사람들이 상당수이며 이들의 강의는 실제와 이론이 적절히 배합된 세계 최고의 강의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모든 인종과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는 곳이며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환경은 NYU의 국제 비즈니스에 대한 연구 수준을 세계 최고로 이끌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의 경영 전략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교수진들이 펼치는 국제 비즈니스 수업은 기업의 전략 회의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NYU가 국제 비즈니스 분야에 강한 또 다른 이유는 NYU MBA 과정이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국제 감각을 키워 주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기 대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세계 유수한 대학들과 협력하여 6개월간 교환 학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원하는 나라에 가서 MBA 과정을 한 학기 수강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학생회 차원에서 다양한 국제 교류 활동도 펼치고 있다. 나의 기획으로 1994년 한 달간 일본 기업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금호그룹 아시아나 항공의 협찬으로 30여 명의 미국인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유수한 기업 현장을 방문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NYU는 금융·재정과 국제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학과 과정에서 어느 학교에도 뒤지지 않는 열정과 실력을 보여 주는데 특히 마케팅과 회계, MIS 등은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MBA 과정은 원래 경영학 비전공자들을 위한 학부 과정이다. 따라서 학부 경영학과에서 다루는 모든 기본 과목들이 전공 필수로 편성되어 있다. 학부 때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은 학부에서 수강한 과목들은 면제받을 수 있으며, 전공 선택 과목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금호그룹 회장 부속실 재무팀과 금호타이어 경리부 등에서 6년간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던 나는 사실 모든 전공 과목에 익숙한 편이었다. 물론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소개되지 않았던 선물·옵션 등 특수 분야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따라서 나는 전공 필수 과목의 거의 모든 과정을 면제받을 수 있었지만 가장 기초적인 과목을 모두 수강하는 전략을 택하였다.

 

같은 기간 NYU에서 수학했던 대학 후배들은 나에게 왜 기본 과목들을 또 듣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그 과목들을 다시 한 번 수강한 효용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과목들은 구체적인 경영 기법을 가르쳐 주지는 못하지만 경제와 경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해준다. 우리 나라의 교육 방식과 전혀 다른 MBA 과정들은 그날 그날의 신문 사설과 기사를 교재로 활용하여 경제를 해독하는 능력과 방법을 일러 주었다. 예를 들어, 강의가 있는 날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자율 변동 예측 기사가 났다면 그 기사를 가지고 신문에는 이렇게 예측을 했고, 책에 있는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예측되고, 통화론자의 이론은 이러하고, 케인즈 학파의 예측은 이러한데, 교수인 내 생각은 이렇다, 당신들 생각은 어떠한가 등 토론식 강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다 연구 기관 및 은행들의 자료가 덧붙여지면 하나의 신문 기사를 가지고 몇 시간 동안 토론하고 배우는 실물 강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에의 적응이야말로 획일적인 공식 암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나라 학생들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MBA는 프로페셔널 스쿨의 학위이다. 의대나 법대의 경우처럼 실전 적용에 필요한 '방법'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학위 취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 유학생들과는 달리 외국 학생들은 입학 당시부터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2년을 보낸다. 학위 취득 후의 진로에 필요한 전공을 선택하고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전공 과목이 세 과목이었다. 즉 파이낸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회사의 지원으로 간 유학이었기에 졸업 후 별도의 취업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지만 프로의 세계는 항상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법칙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전공에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한국 학생들 대부분은 파이낸스를 전공한다. 이는 한국 학생들이 계수 감각이 뛰어나고 총명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영어를 제대로 못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이 읽고 쓰고 말해야 하는 전략, 마케팅, 조직 등은 개인적으로 흥미가 많은 과목이더라도 영어 구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파이낸스를 택하는 것이다. 이런한 선택은 최악의 것이다. 어차피 파이낸스를 하더라도 영어를 하지 못하면 외국에서 원하는 직장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외국인이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피하면 그 과정을 스스로 선택한 보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MBA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과정 수료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에 우리 나라에서는 MBA 학위만 있으면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같은 세계화된 시절에 구체적인 목표 없이 마치 MBA를 하나의 자격증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뚜렷한 목표 의식 없는 MBA 수강은 예전 학력고사 점수만 가지고 전공을 선택했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NYU는 월스트리트와도 가깝지만 경영대학원이 있는 곳은 흔히 빌리지라고 불리는 문화의 중심지이다. NYU에서의 생활은 미국의 여러 유명 대학에서의 생활과는 다르다. 전원에서 학문을 파고드는 한적한 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일 것이다.


학교 바로 옆에는 음악광이라면 알고 있을 유명한 재즈 바들이 많다. 특히 웨스트 4번가 전철역에서 학교로 걸어오는 거리에 있는 바텀 라인에서는 Eric Clapton, J.J. Cale, Joan Baez, Tom Rush 등 포크와 블루의 거장들이 매일 공연을 펼친다. 학교에서 10분 거리 안엔느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이 기다리고 있으며, 한국 교포가 운영하는 킴스 비디오에서는 한국에서는 수입조차 금지되어 있는 세계 각국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전철을 타면 링컨 센터나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20~3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 성악가들이 가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으며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공연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MOMA, 구겐하임 박물관, 휘트니 박물관 등 말로만 듣던 화가들의 그림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미술과들이 시내 곳곳에 있으며, 학교 바로 옆으로 난 길에는 SOHO라는 젊은 화가들의 집결지가 있어 길을 걸으며 첨단을 달리는 실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학교 바로 뒷길은 사이먼&가펑클의 노래에도 나오는 비커 스트리트로 여기서는 오 헨리가 '마지막 잎새'를 썼다는 피가로 카페에서 풍겨 나오는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헌 책방들을 뒤지는 재미도 크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딱딱하기만 하고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 MBA 과정에 꼭 필요한 활력소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도시 뉴욕이 제공하는 최고의 선물이며, 뉴욕만의 자부심을 제공한다. 세계인들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물론 경영학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문화를 편견 없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한 가슴도 필요하다. 나는 매주 이틀 이상을 놀았다. 아니 어쩌면 학교에서의 배움보다는 뉴욕에 제공하는 자유로움을 배우는 것이 더욱 절실했는지 모른다. 우리 나라처럼 하나의 민족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구조의 집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며 똑같은 놀이에 똑같은 생각을 하는 데에 익숙해진 습관들을 깨뜨리지 않는 한 세계를 무대로 경쟁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NYU가 제공하는 문화적 풍성함은 고정 관념을 깨뜨리며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뉴욕은 미국이 아니고 뉴욕일 뿐이다.'
1995년에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2년간 미국에서 공부한 것은 사실인데 미국적인 것에 대한 경험은 많지 않았다.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 자체로 독특한 것이었고, NYU에서의 학습 역시 그만의 색깔이 있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외국 기업과의 합작을 추진하는 일이다. 매일매일의 격무가 이어짐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투자 은행과 밀고 당기면서도 뱃심이 두둑한 이유는 뉴욕을 한 번 경험했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성 호
Class of 1997 University of Texas-Austin
선진화학 근무

 

나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관계로 사업가가 되기를 원했고, 전공도 사업과 관련이 있는 생화학을 선택했다. 대학 생활은 비교적 평범했고, 학점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대학 시절, 교환 학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수학하기도 했고(이 경험은 후에 대학원 및 MBA 입학 사정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난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경제·경영학 분야에 관심이 커서 혼자서 경제 관련 서적을 꾸준히 탐독했다.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1년 반을 근무했는데 회사의 규모가 작았던 까닭에서 현장에서 작업 조장을 하다가도 외국 손님이 오면 통역을 하고, 해외 세일즈 출장도 가는 등 바쁘게 보냈다. 그런 중에 나를 잘 보아 주신 교수님의 추천으로 예일대학 화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에 합격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주위의 기대와 관심이 은근히 부담이 됐지만 '5년만 고생하자'라는 심정으로 공부를 했다. 박사 과정 공부는 무척 힘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이 분야에 관심이 없으면 경제적으로도 그리 윤택하게 될 것 같지도 않았고, 실험실에서 혼자 실험에 매달리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이 머리곳에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박사 과정에 대한 회의와 함께 단조로운 생활에도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때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던 선배들로부터 MBA의 이모저모에 대해 듣게 되면서 첫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MBA 지원을 결심하였다. 물론 그 당시 주위에서 신중히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나 그 때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오스틴은 회계와 정보 관리(Information Management)가 항상 톱 5안에 들 만큼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직장을 잡아 정착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오스틴에서는 MBA보다 MPA(Master of Professional Accountant) 과정을 들어가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MBA 지원자들은 각 학교의 커리큘럼을 비교한다. 그러나 이것은 향후 자신의 직업과 관련되어서는 의미가 있지만 학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첫째, 한 학생 수가 4백 명이 넘는 중간 규모 이상의 MBA 프로그램이라면 학생들이 원하는 웬만한 강좌는 다 개설돼 있고, 둘째, 비즈니스 스쿨 교수들의 강의 기술은 대부분 매우 우수하기 때문이다. 설령 교수 전체의 평균 수준이 좀 떨어지는 학교라도 그 중에는 반드시 뛰어난 교수가 있게 마련이므로 그 교수의 강의를 골라 들으면 된다. 셋째, 커리큘럼의 실제 내용을 평가하기란 어렵고도 주관적이기 때문에 각 비즈니스 스쿨의 커리큘럼을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커리큘럼과 향후 직업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물론 커리큘럼이 향후 훌륭한 직장을 제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모든 것은 개인별 역량과 자질에 달려 있다. 그래도 마케팅은 켈로그, 파이낸스는 와튼, 스턴, 컬럼비아 하는 식으로 분야별 우수 학교가 있는데, 오스틴은 월가의 투자 은행에 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불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오스틴의 파이낸스 커리큘럼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텍사스에서 뉴욕까지의 지리적인 약점과 파이낸스 분야에서의 오스틴의 명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졸업 동기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보 관리 다음으로 파이낸스를 전공했으며, 이들 중에는 월가에 진출한 사람도 많다. 이 외에 대부분의 동기들이 텍사스를 벗어나 미국 각지의 기업 금융 분야에 취직한 것으로 미루어 결국 어떤 직장을 가지냐 하는 것은 학교의 커리큘럼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분야를 결정했으면 최선을 다해 그 분야가 강점인 학교를 선택하고, 설령 그 학교가 자기를 선택해 주지 않더라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므로 너무 특정 분야의 커리큘럼과 명성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UT Austin은 UT 계열 대학교의 메인 캠퍼스로 분위기는 가족적이며, 규모는 학생 수 5만 명의 메머드급이다. 미국 남부의 유수한 대학으로 공대와 법과대 및 경영대학원 모두 미국 전체에서 항상 톱 20위 안에 들며, 학교의 자산과 기부금이 하버드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어(6, 70년대 텍사스주의 석유 경기가 활황을 띠면서 엄청난 오일 달러가 학교에 들어왔고, UT가 직접 유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 주립 학교 중에서도 학비가 저렴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 오스틴은 전통적으로 대학 미식 축구로 유명한데, 통산 7백 승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내 4대 전통 강호로서 미식 축구 경기가 있는 주말은 온 도시가 시끌벅적하다. 이 외에도 농구, 야구, 수영, 골프(돔 카이트, 저스틴 레너드, 벤 크렌쇼비 등 PGA 강호들이 UT 출신) 등 대학 스포츠가 아주 강하다.


오스틴은 텍사스주의 주요 도시로, 인구 30만에 인근 지역의 인구까지 합치면 1백만 명이 넘는다. 80년대 가장 성장한 도시가 피닉스라면 90년대는 오스틴이라는 이야기가 있듯 최근 미국의 정보 통신 업계의 유수 회사가 거의 모두 오스틴에 근거지를 두고 있을 정도로 첨단 하이테크 산업의 요람지로 성장하고 있다(삼성전자도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다). 도시는 매우 아름다우며 언덕에 위치해 있어 기후도 쾌적한 편이다. 미국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범죄가 거의 없어 다운타운에서 주말이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걸어다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집 임대료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미국 동부나 서부와 비교해서는 물가도 비교적 싼 편이다.


비즈니스 스쿨은 풍족한 학교 자금과 하이테크 도시답게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컴퓨터 룸이 풍족하게 있으며, 미국 월스트리트와 광섬유로 직접 연결된 투자 시뮬레이션 룸, 멀티미디어와 최신 컴퓨터로 채워진 IM 과정 학생을 위한 클래스 룸 2000 등이 있다.


특히 다른 비즈니스 스쿨과 차별되는 점으로 Cohort 시스템을 들 수 있다. Cohort 시스템은 MBA 과정 1년차 학생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스터디 그룹을 지정해 주고 1년 동안 같은 코어 코스(Core Course)를 공부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학생들간의 친밀감 형성에 효과적인데, 자칫 소외되기 쉬운 외국 학생들의 학과 적응을 돕는 훌륭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현재 LG-EDS의 컨설팅 부문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가 담당하는 컨설팅 분야는 오퍼레이션 컨설팅과 정보 기술 컨설팅으로 요약된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어디에서 낚시를 하면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게 경영 전략 컨설팅이라면, 어떻게 앉은 자리에서 고기를 최대로 잡을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분야가 오퍼레이션 및 정보 기술 컨설팅이다.


MBA가 내 업무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MBA 과정을 통해 얻은 여러 관련 지식을 종합해서 전체적인 시작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해 가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는 게 정확한 얘기일 것이다.

 

사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MBA 2년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이 지속적으로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은 무리다. MBA 과정에서는 예비 경영자로서의 안목과 기본 역량을 갖추고, 실무 지식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면서 부단히 노력하여 스스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MBA를 통해 너무나 많은 중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우선 MBA 과정을 마친 후 일하게 될 직장에서 필요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지식들은 국내 경영학과나 경영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경영학을 이루고 있는 분야들을 골고루 공부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다.


셋째, 영어 실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발표력이 향상된다. 일반적으로 한국 유학생 중 엔지니어링 스쿨에 다니는 사람과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는 사람의 영어 실력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유학 생활을 통해 미국인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태도를 접할 수 있고, 국제적인 감각을 기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하는 것도 MBA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많은 연구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MBA 과정의 금전적 보상 효과는 톱 20 비즈니스 스쿨 졸업자들의 경우 MBA 졸업 후 5~7년이면 손익 분기점에 다다르고 이후로는 순수익이 발생한다고 한다. MBA를 하나의 투자로 생각하더라도 금전적 손해가 생길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더구나 MBA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향후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안 경 한
Class of 2000  LBS(London Business School)

 

'공돌이'.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기업이라는 환경에서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라면 자의건 타의건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엔지니어는 회사의 경영과 무관하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기 보다는 주어진 명령 체계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존재라는 의식이 강한 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특히 내가 다니던 회사처럼 기간 산업체로서 특별한 기술 개발 없이도 안정된 수익을 얻어 내는 회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사고 방식이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떤 면에선 별다른 스트레스도 없어 편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병역 특례 연구 요원으로 근무하던 나로서는 엔지니어로서의 생활이 아무런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낭비하면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고,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적극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때 인터넷에서 찾아낸 MBA 관련 정보는 이런 나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다.


막상 준비를 하려고 보니 무엇보다 가장 커다르나 장벽은 정보의 부족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에서는 GMAT과 관련된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GMAT 오피셜 가이드> 한 권 구하기도 힘들었다. 다행이 이 무렵 회사에 인터넷이 개설돼 인터넷을 통해 교재와 MBA 관련 정보를 구할 수 있었다. 통신을 통해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면서 나름대로 준비는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일, 이상하게도 그 동안 없던 일이 갑작스레 자신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더구나 직장 경력이 5년쯤 되고 나면 회사에서도 과중한 업무와 함께 그에 합당한 결과를 요구하는데, 나도 바로 이런 경우에 속했다. 스터디 모임이 만들어지고 일 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기로 약속한 뒤 다음 주 토요일 서울행 고속버스를 예약해 놓은 나에게 갑자기 6개월간 공장 파견 근무가 떨어졌다. '하필이면 왜 이 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 이후로 주말이면 왕복 7백km 거리의 공장과 서울을 오가는 고행이 시작됐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스터디 모임의 동료들과 함께 공부를 해가다 보니 GMAT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자연히 점수에 대한 욕심도 생겼고, 유에느 뉴스 앤 월드 리포트 잡지에 발표된 1등부터 10등까지의 학교 순위만 눈에 들어왔다. GMAT 성적이 입학 절차의 한 요소일 뿐임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톱 10 스쿨의 입학생 평균 GMAT 점수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와튼 스쿨의 인터뷰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때는 모든 원인을 GMAT 점수로 돌렸다. 그 때가 11월이었는데, 12월까지도 GMAT에서 손을 뗄 수 없었고, 결국 나는 학교 지원에 있어서 전체적인 구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됐다.

 

마지막 GMAT 시험에서 겨우 650점이라는 점수를 받았지만 그 때는 에세이 준비도 소홀했을 뿐만 아니라 TOEFL 점수도 583점에 불과했다. GMAT 준비에 진을 빼다 보니 더 이상 토플 시험을 칠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여럭도 없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미국 톱 10 스쿨 중에는 토플 600점 이상을 요구하는 학교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예 원서를 넣어 볼 수도 없는 곳이 수두룩했고, 톱 30 스쿨로 지원의 폭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약 일곱 개의 학교에 원서를 보내다 보니 12월이 지났고, 1월에는 유럽의 두 학교(네덜란드의 RSM과 영국의 LBS) 원서 지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유럽의 학교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현지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미국 톱 10에 준하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보다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네덜란드의 경제 상황이 좋았으며 ING, ABN AMRO와 같은 세계 굴지의 금융 기관의 '고향'이라는 점이 주효했다. 특히 네덜란드의 RSM은 유럽 학교 중에서도 IT(Information Technology) 분야로 특화된 학교이다.


LBS는 말할 필요도 없이 유럽 3대 경영대학원 중 하나이고, 유럽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 인턴십과 직장 선택의 기회가 풍부하다는 데 매력이 있다. 게다가 전체적인 분위기가 미국식과 유럽식이 혼합되어 있어 두 지역의 장점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고, 2년 코스로 운영되고 있어서 나 같은 공대 출신 지원자가 경영학 공부를 충실하게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LBS 동문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학교 정보를 비교적 상세히 들을 수 있었고, 런던에 살고 있는 처형 덕분에 다른 학교들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3월은 지옥과도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3월 10일, 켈로그의 불합격 통지서를 시작으로 거의 이틀 간격으로 얄팍한 영문 편지들이 날아들었다.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태에서 아무 곳에서도 받아 주지 않겠다는 편지를 뜯고 있는 초라한 내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노심초사 내 눈치만 살피고 있는 아내의 모습 또한 나에겐 견딜 수 없는 부담이었다. 거의 몽롱한 상태에서 3월을 보냈다. 4월 첫주 들어 처음으로 선더버드(Thunderbird)에서 장학금과 함께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그리고 1주일 후에는 UIUC, 퍼듀, RSM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이 때가 돼서야 겨우 부모님과 아내에게 면목이 서는 것 같았다.

2월에 원서를 넣은 후로 아무 소식이 없던 LBS에서 인터뷰 요청이 온 것도 이 때였다. 5월 중순경에 서울에서 LBS의 미국인 동문과 인터뷰를 하고, 6월 첫째 주에 LBS에서 보낸 합격 통지서가 든 두툼한 봉투를 받으면서 나의 길고도 험했던 한국에서의 MBA 준비는 대단원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른 유학 준비와는 달리 경영대학원 유학 준비에는 반드시 인터뷰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특히 톱 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는 GMAT, 에세이와 함께 당락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더구나 나처럼 토플 점수가 낮거나 학점이 좋지 않은 지원자라면 인터뷰야말로 그런 단점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실제로 RSM과 LBS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준비를 많이 한 덕택에 "너의 토플 점수가 당

락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고, 결과 또한 좋았던 게 하나의 전형적인 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참고로 위의 두 유럽 학교 지원자들을 위해 내가 받았던 질문들을 소개한다.

 

LBS
1) 한국 재벌 시스템의 장점과 단점은?
2) 단점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3) 당신의 상사화 회사 구조가 보수적이라면, 이들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겠는가?
4)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당신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5) 왜 MBA를 하려는가?
6) 미래의 계획은 무엇인가 등

 

RSM
1) 최근 너희 그룹에서 자동차 사업을 매각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에 네가 그룹의 결정권자였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2) 자동차 사업 매각으로 너희 회사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
3) 임금이 깎였다고 했는데, 그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4) 어떠한 이유로 자동차 사업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가?
5) 상사의 요구와 부하 직원들의 요구가 다를 경유, 당신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가겠는가?
6) GMAT 공부는 얼마나 했나? 어떻게 공부했나?
7) 영어 점수가 낮은데, 업무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는가? 해외 경험은 있나?
8) 어떻게 영어 실력을 높일 것인가?
9) 왜 MBA를 하려는가?
10) 왜 RSM을 택했나?
11) 왜 유럽 지역을 택했나 등

 

 

정 성 욱
Class of 1999  INSEAD

 

 

내가 MBA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삼성물산에 입사한 지 3년이 되면서부터다. 그 무렵 나는 많은 사람이 해보고 싶어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스스로도 그 일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합상사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장기적으로는 뭔가를 준비해 두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내 갈 길을 선택해야지 주위 상황에 의해 내 인생이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과 간판이 동시에 필요했고 MBA는 이러한 필요들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되었다.


INSEAD 지원 절차는 미국의 비즈니스 스쿨 지원 절차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단지 1년에 학기가 두 번(각각 1월과 9월에 시작) 있고, 연중 입학생을 선발한다는 점이 다르다. 9월 학기를 목표로 한다면 접수 마감일이 3월 중순이므로 미국의 비스니스 스쿨에 지원할 무렵 같이 하면 된다.

INSEAD는 먼저 원서 전형으로 지원자들을 선발, 동문과의 한두 차례 인터뷰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결정한다. 인터뷰는 굉장히 중요하다. 사실 당락 여부는 인터뷰어의 의견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서울에 근무하는 프랑스인 동문과 약 두 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특이했던 점은 다른 학교의 경우처럼 회사 사무실이나 호텔 로비에서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라, 리츠 칼튼 호텔에서 뷔페를 먹으면서 했다는 것이다.

INSEAD에 입학하기 위한 최저 기준은 TOEFL 620점, 또는 TOEIC 950점이다. GMAT의 경우 최저 기준은 없으나 입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684점이다. 국제화된 비즈니스 스쿨을 자랑하는 학교이니만큼 해외 경험이 많으면 유리하다. 그 외의 주요한 통계수치(1997년의 경우)들을 공개하면 아래와 같다.

 

모집 정원 600명(9월 학기와 1월 학기에 각각 300명씩)

여학생 비율 19%
평균 연령 28.5세
직장 경력 3~5년(39%), 5년 이상(42%)
출신국 수 54개국
평균소요 비용 4만 5천 달러(1인 기준)
진로 컨설팅(51%), 금융(23%), 기타(27%)

 

한국인 졸업생은 20여 명 있는데 대부분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거취가 확인된 동문들은 대부분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거취가 확인된 동문들은 대부분 투자 은행과 증권 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컨설팅 업계에도 많이 진출했다.

 

내가 처음 INSEAD를 고려하게 된 것은 "1년짜리 과정인데 굉장히 좋은 학교가 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부터였다. 내겐 '직능 연수 + 좋은 간판' 정도의 의미로만 와 닿았던 MBA를 마치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게다가 INSEAD를 졸업한 프랑스 친구와 만나며 구체적으로 알게 된 INSEAD는 내가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학교였다. 결국 다른 미국 MBA 과정에 지원하는 것은 INSEAD에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MBA를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미국의 비즈니스 스쿨의 절반이라는 사실은 비용 또한 절반임을 의미한다. INSEAD의 경우 독신으로 유학학 때 1년간 드는 경비가 학비 2만 7천 달러를 포함하여 약 4만 5천 달러 정도라고 한다. IMD나 LBS는 물가가 비싼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경비가 좀더 들겠지만 2년 과정에 투입되어야 하는 비용에 비하면 여전히 저렴하다.

INSEAD의 경우에는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결코 통하지 않는다. 미국의 톱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2년간 20~24과목을 이수하는데, INSEAD에서는 1년간 22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그만큼 과목당 집중하는 시간이 적지만, 그래도 미국 톱 스쿨의 2년간 수업내용 중 80%는 배우게 될 거라고 학교측은 말한다. 전 세계 mBA 스쿨의 순위를 매기는 잡지들을 보면 유럽의 MBA 스쿨들이 스탠퍼드, 하버드, 와튼과 더불어 항상 5위 안에 드는데 이는 이들 학교가 '비지떡'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지금 유럽 각국의 도시에서는 1999년 1월부터 통용된 유러(Euro)를 찍어 내느라 여념이 없다. 2002년 7월부터는 마르크나 프랑화로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수도 없다. 경제학자들은 유러화와 EMU의 탄생을 제2차 세계대전을 뛰어넘는 충격이라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유러화의 탄생이 유럽 재부흥의 기반이 된다고 말한다.

유러화가 발행되기도 전에 일본과 대만 정부는 유러화로 채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기축 통화로서 더 안정적일 것이라고 기대되는 유러화는 그 시장이 몇 년 안에 달러 시장에 근접할 만큼 커질 것이다.

현재에도 한국은 미국계 금융 기관보다 유럽게 금융 기관에서 더 많은 차입금을 가져다 쓰고 있다. 유러화가 본격적으로 통용되는 1999년부터는 유럽계 금융 기관과의 거래가 상대적으로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 부문에서 한정해 볼 때 유러 시장이 커지는 만큼 유럽에 배경을 가지고 있는 MBA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더 커지지 않겠는가? 물론 미국계 은행들도 유러를 다룰 것이고, 유럽게 은행들도 미국 MBA 출신을 뽑을 수 있겠지만 현재 추세로 볼 때 유럽 시장과 유럽 문화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유리하다. 적어도 같이 공부했던 급우들 대부분이 유럽에 남을 테니까 말이다.

아시아의 경제 위기 여파로 987년도 미국 비즈니스 스쿨들은 유난히도 한국 학생들에게 너그러웠다. 외국 학생들(Internatinoal Student)의 비율에서 아시아인의 비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줄어든 동남아 지원자 수만큼 어디선가 보충해야 했다. 결국 톱 10스쿨의 입학 허가서를 받은 사람만 1백 명 가까이 되며, 교포까지 합한다면 이 숫자는 배로 늘어난다. 더구나 예년의 경우 톱 10 입학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국내 대기업에서 스폰서를 받아서 가는 예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2년 후의 상황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MBA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 것이다. 하지만 MBA 출신들이 선호하는 투자 은행이나 컨설팅 회사에서 선발하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의 톱 10 스쿨에만 들어가면 졸업 후 어떻게된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위험하다. 자신의 경력과 MBA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을 고려해서 기간과 지역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5년 정도의 직장 경력이 있었기에 MBA는 1년 과정이면 충분하다고 믿었고, 2000년 가을 한국 시장에 들어올 1백 명도 넘는 경쟁자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는 INSEAD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입학 전 몇 달간의 자투리 시간 동안에는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기도 했다. 만약 미국 학교를 선택했다면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유럽에서 MBA를 한 사람들은 유럽 MBA를 'International MBA', 미국 MBA를 'American MBA'라고 말한다. 미국 비즈니스 스쿨 중 좋은 학교일수록 International School임을 강조하지만 외국인 학생 비율이 30%를 넘는 경우는 드물다. 그나마 그 30%의 절반 이상이 MBA를 하기 전에 이미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의 톱 비스니스 스쿨들은 매년 50개국 이상의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INSEAD의 경우에도 자국인 프랑스 학생들의 자리로 15% 이상 내준 역사가 없고, 오히려 이를 자랑으로 삼고 있다.

'국제화' 되었다는 것이 구호에 그칠 뿐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제화된 환경을 경험하는 것이 국제적인 비스니스를 수행하는 데 도우을 줄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INSEAD에서는 무작위로 학생들을 뽑아 스터디 그룹을 짜는데도 같은 나라의 학생이 한 그룹 안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국제화된 학교의 장점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느낄 수 있다. 가령 3백 명의 학생 중 프랑스 학생이 2백 50명이고 50명이 그 외의 나라에서 왔다면, 2백 50명의 프랑스 학생들은 나머지 50명에 대해 특별히 배려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3백 명이 모두 다른 나라 출신일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우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영어가 서툴고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한국과 일본 학생들에겐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하고 발표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일찌감치 나를 포기해 버리기보다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내 장점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소수이고 각자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므로 문화와 언어적인 소외감은 없다.

INSEAD의 빡빡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졸업생들은 “공부만 해서는 INSEAD에서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을 놓친다” “힘들었지만 너무 재미있는 기억들이 많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거의 매주 파티가 있는데, 이는 나라마다 한 주씩 돌아가며 행사를 하는 National Week(가령, 이번 주는 German Week, 다음 주는 French Week)와 맞물려 색다른 문화 속에서 동기들 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좋은 모임이 된다.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친해진 동기들은 방학이나 졸업 후에 세계 각국의 친구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저 손님은 지난번 우리 가게에서 쇠고기를 샀으니까 오늘도 쇠고기를 살 거야’라는 식의 사고 흐름을 적응적 예측이라고 하자. 그리고 ‘저 손님은 지난번 우리 가게에서 쇠고기를 샀지만 쇠고기값이 그새 많이 올랐으니까 돼지고기를 살지도 몰라’라는 식의 사고 흐름을 합리적 예측이라고 하자.

두 예를 견주어 보면 누구나 다 합리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옳다고 믿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부딪히면 새로 고려해야 하는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이 해 온 선택을 여과 없이 쫓아간다. 사람들이 그렇게 선택하는 이유는 당장이 들어가는 심리적인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그에 따른 결과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여기서 누구나 미국 MBA를 포기하고 유럽 MBA를 하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쉽게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닌 만큼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내 형편에 맞게 한번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어제의 사실이 내일을 판단하는 가설로 쓰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안 종 선
Class of 2000  University of Chicago

 

시카고 교육의 질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시카고를 서택할 수밖에 없다.
1898년에 설립된 시카고 대학은 금융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밀러(Merton Miller)를 비롯하여 1990년대에 노벨상을 받은 교수만도 자그만치 네 명. 금융 분야만큼은 최고의 교수진과 연구 업적을 자랑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금융을 전공하려는 사람만이 시카고를 선택해야 하는가? 대답은 한마디로 NO! 시카고는 마케팅 등 다른 경영 관련 분야에서도 탁월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일례로 <비즈니스 위크>지에서 미국 경영 대학원의 최고 교수 열 명을 발표했을 때 시카고대의 개인 사업 분야의 교수 두 명이 선정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시카고대는 MBA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컨설팅과 투자 은행으로 동시에 많은 졸업생들을 보내는 몇 안되는 경영대학원 중 하나이다.

이처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시카고대는 교육 프로그램 역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학구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은 학생들로 하여금 엄청난 학습량을 요구한다. 학제 시스템도 차이를 보인다. 최근 많은 경영대학원에서 합격/불합격(Pass/Fail)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데 반해 시카고대는 기존의 학점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분위기도 경쟁적이다. 나는 공대 출신으로서 경영 분야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여러 학교 중 특히 시카고의 넘치는 자신감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교육의 질과 배움의 기회, 그리고 졸업 후 취직 기회 등을 따져 보았을 때 시카고대만이 오직 내가 갈 학교라 생각했다.

 

시키고의 가장 큰 장점은 커리큘럼의 유연성에 있다. 대부분의 경영대학원이 7~8개 정도의 필수 과목을 개설하고 있는데, 시카고대는 LEAD(Leadership Exploration and Development)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필수 과목이 없다. 따라서 해당 과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경우 바로 고급 과정의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대학에서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이점이다.

시카고대가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지원자를 다양하게 뽑는다는 점이다. 시카고대가 워낙 금융 분야에서 강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전공이나 경력 사항이 없으면 지원했을때 불리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카고대 합격자의 약 50%는 금융 관련 경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진로를 고려했을 때 시카고대와 자신의 연관성을 발견하고, 시카고대가 제공하는 구체적인 이익을 에세이에 명확히 언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카고대의 지원자에 대한 평가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각 지원서는 먼저 1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Deans Student Admission Committee에 의해 1차 평가된 후 입학 사정 위원회(Admission Committee)에 의하여 2차 평가된다. 지원자의 최종 합격 여부는 1, 2차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디렉터인 도널드 마틴에 의해 결정된다. 입학 허가가 결정된면 정식 합격 편지를 보내기 전에 마틴이 전화 혹은 전자 우편으로 합격 소식을 알려 준다.

시카고대의 경우 지원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에세이, 직장 경력, 프로 정신, 성숙도, 추천서, 시카고대에 대한 관심 정도, 과외 활동, 인터뷰, GMAT 그리고 학점 등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에세이와 직장 경력이다.

자신의 경력 사항은 지원서에 따로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지원서의 공간이 좁으므로 이왕이면 별도의 종이를 첨가해 자세히 적는 것이 좋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시카고대는 지원자의 학교에 대한 관심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이다. 시카고대는 1993년 합격자들이 42%의 등록률을 보이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지원자가 정말로 시카고대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이 때부터였다. 따라서 에세이에 학교에 대한 관심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면 입학 허가를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지원자는 에세이의 "Why Chicago?"라는 질문에 상당히 유의해 대답해야 한다.

 

시카고대는 또한 아주 적극적인 웨이팅 정책을 쓰고 있다. 매년 차이는 있지만 약 3백~4백 명의 지

원자를 합격 대기자 명단(waiting list)에 올릴 만큼 강력한 정책을 쓰고 있다. 때문에 만약 시카고에서 웨이팅 리스트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는다면 입학 사정 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려야 한다. 웨이팅 리스트에 오르는 지원자 대부분은 지원 조건 중 에세이의 "Why Chicago?" 내용이 빈약한 경우다. 따라서 "어떤 자룔르 보내면 나를 재평가하는 데 유용한가"라는 질문을 편지나 전자 우편 등을 통해 부지런히 보내야 입학 허가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시카고대는 지원자의 수량적인 능력도 중요시 여긴다. 수업 내용 자체가 학생들의 강한 분석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종종 웨이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수량적 능력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이 때 수량적 능력을 따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원자라면 GMAT 수학 부분의 높은 점수를 강조할 수도 있다. 한편 TOEFL은 합격 600점 이상, 모든 파트별 55점 이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것은 엄격히 지켜진다.

인터뷰는 학교에 대한 관심과 에세이에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므로 반드시 하도록 한다. 시카고대는 1997년부터 입학 사정 위원회가 직접 한국에 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는 12월 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베드 베이더라는 여성과 약 30분 동안 인터뷰했다.

 

인터뷰 분위기는 아주 편안했는데 첫 번째 질문은 "Talk about yourself."였다. 학교에 대한 관심을 알아보려는 의도에서였는지 졸업생들을 통해 발견한 시카고대의 좋은 점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도 있었다. 인터뷰와 관련해서 한 가지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자신이 정말 가고 싶은 학교는 되도록 나중에 인터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와 한두 번 인터뷰를 하고 나면 뒤에 훨씬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카고대의 지원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원 시기는 3라운드제로 각 라운드의 마감일은 12월 1일, 1월 16일, 3월 20일이다. 인터뷰는 원서를 받고 난 뒤 되도록 빨리 신청하는 것이 좋다. 인터뷰는 입학 사정 위원회나 졸업생을 통한 인터뷰, 전화 인터뷰 등 모두 가능하다. 인터뷰는 12월 초에 실시되며, 지원서는 미리 작성해 인터뷰때 지참하는 것이 좋다.

지원서를 보내면 학교측에서는 지원서와 GMAT, TOEFL 점수 등의 도착 여부를 엽서로 알려준다. 합격자 발표 시기는 원서에 나와 있는데 보통 각 라운드의 마감일로부터 두 달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합격 발표일 즈음에 <프린스턴 리뷰>의 웹 페이지(http://www.review.com)에서 'Business School Discussion' 난을 보면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다

 

 

김 재 홍
Class of 1997 Yale University  
삼성화재 근무

 

MB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MBA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만일 당신이 MBA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탈출구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 생각을 당장 버리길 바란다. MBA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며, 그 과정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MBA는 나에게 유용한 직장 생활과 새로운 인생을 여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빛나는 인생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성공적인 MBA 지원 준비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당 기간에 걸친 직장 경험과 어학 실력, 마음가짐, 프로 정신, 미래의 직업에 대한 철저한 탐색과 열망, 이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야만 한다. 그 중에서도 직장 경험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왜냐하면 직장 경험을 통해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이 무엇이고, 그 일을 위해 MBA 과정에서 나의 능력을 어떻게 최고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볼 때 나의 MBA 준비는 실패에 가까웠다. 내 전공은 철학이었는데 유학을 간다고 해도 전공을 살려 공부할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정치학이나 행정학 쪽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졸업을 하게 됐고, 대기업에의 취직 타이밍도 놓쳐 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유학 준비를 빙자하여 선배가 운영하는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게 됐는데, 유학 준비도 아닌 그렇다고 훌륭한 직장 경력도 아닌 상태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의 2년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때 나는 단순히 미국에서 학위를 받으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경력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는 2년동안 유학 준비를 하면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기로 마음먹고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의 TEXAS A&M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것도 1년만에 그만두고 새롭게 MBA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 때 나의 목표는 MBA 졸업장을 따는 것,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MBA 과정에서 특별히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없었기 때문에 MBA 순위라든지 취업과 관련된 명성 등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름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명문 대학을 우선적으로 고르게 됐고, 그 중에서도 하버드와 예일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됐다. 특히 예일 SOM(School of Management)은 미국 최고의 명문대라는 점과 하버드에 비해 직장 경력을 까다롭게 요구하지 않는 점이 좋아 선택하게 됐다.

더구나 하버드나 기타 몇몇 고려 대상이 된 학교들은 학생들간의 경쟁이 너무나 치열해서 A학점을 얻기 위해 '서로의 등을 찌르는(Back stabbing)' 살벌한 투쟁을 벌이기 일쑤다. 하지만 예일 SOM은 A, B, C, D라는 등급 없이 단순히 Proficient, Pass, Fail로 학점이 구성되어 있어 학생들은 서로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예일대의 또 다른 매력은 독특한 커리큘럼과 학위였다. 예일대 SOM은 MBA가 아닌 MPPM(Master of Public and Private Management) 학위를 수여해 왔다. MBA 대신 이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관리자라면 민간 기업에 있든 공기업이나 행정 기관에 있든 효율적인 운영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운영돼 가는 데는 효율성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정치 논리도 작용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까지잘 조절할 수 있는 관리자가 되라는 데 있다. 이런 신념들 때문에 예일 SOM은 여러 공공 부문(Public Sector)에 관한 강좌를 개설하고, 비영리 부문(Non-Profit Sector)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일대도 1999년부터 MPPM 대신 MBA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결국 나는 예일대 SOM을 선택하게 되었고 1995년 봄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입학 후 나는 공공 부문보다는 영리를 추구하는 재무에 흥미를 갖게 되어 전공 역시 재무를 선택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선택이나 전공 선택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단순하고, 계획이 없었던가 부끄럽기만 하다. 만일 지금 여러분이 MBA를 준비하고 있다면 이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각 학교는 나름대로 특성이 있고, 그에 따른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나에게 유리한지를 잘 판단해서 지원해야 한다.

예상대로 예일 SOM에서의 생활은 불만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교육 시설도 좋았고, 함께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과 교수들의 수준, 인간 관계 등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기 부여와 참여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나에게 유학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주었고, 가끔 레저 스포츠를 즐기면서 비교적 여유 있는 유학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여유를 즐기는 사이 많은 학생들은 조용히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1학년 때 대다수 학생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서머 인턴이었다. 여름 방학 때 원하는 곳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하기 위해 학생들은 사활을 걸고 모의 인터뷰에 매달렸다. 그러나 나는 당시만 해도 서머 인턴에 대해 별다른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때부터 변하고 있었다. 학벌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키우지 않는 이상 최고 명문 대학의 졸업장은 무용지물이 되어 갔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2학년이 되자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직장을 구하는 일은 전쟁이라 불릴 만큼 치열했고, 학생들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서머 인턴을 잘 마친 학생들은 해당 회사로부터 제의를 받고 벌써 연봉 협상에 들어가 있었다. 그 때 나는 현지의 미국계 금융 기관보다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더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설사 나중에 한국에서 일하더라도 미국에서 경력을 쌓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러한 판단 착오는 직장 경험이 부족했던 탓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국내에서 최고의 안정성을 자랑하는 모 금융 기관에서 해외 유가 증권 투자 업무를 맡고 있다. 물론 지금 MBA에 대한 내 생각은 몇 년 전 MBA를 처음 시작했던 때와는 180도 달라져 있다. 만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선 나는 훌륭한 직장에서 경험을 쌓을 것이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그 분야에서 실력을 키울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그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비즈니스 스쿨에 지원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MBA를 준비하고 있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직도 MBA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해 이전의 나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MBA 유학에서 기대만큼의 수확은 얻지 못할 것이다. MBA를 여러분보다 먼저 끝마쳤으나 준비되지 않아 여러 가지고 후회가 많은 MBA의 선배로서 부디 이 글이 타산지석이 되길 바란다

 

 

김 영 훈
Class of 1996 MIT
동양그룹 구조조정본부 근무

 

은행 생활 7년, 그리고 선배의 지원으로 소기업을 경영한 지 4년여의 세월이 흐른 어느 여름날 블현듯 찾아온 나의 능력과 미래에 대한 회의는 견딜 수 없는 무게로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거래처 발굴과 접대, 자금 조성 경영 전략 수립 및 실행, 직원 관리 등 일상 업무에 익숙해진 몸과 머리는 본능적으로 일탈을 거부하고 있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찾는 일이 매우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미 유학을 마치고 강단이나 컨설팅 회사에서 욱일승천하고 있는 주변의 선후배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조요 오는 심리적 압박감 또한 인내의 표준 편차 밖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부조리한 삶은 결국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작을 하게 했다. 내 스스로 삶의 궤적을 다시 그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해외에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 하나의 반전. 경영대학원이냐, 법과대학이냐? 30대 중반의 나이와 재산 상태를 고려할 때 법과대학을 수료하기 위한 4년여의 공백은 기회 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 됐다. 미국 변호사 자격으로 한국에서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많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렇다면 전략적 경영 마인드를 갖춘 CEO가 돼 보자. 이렇게 MBA 과정을 선택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준비 과정은 왜 그리고 복잡하고 어려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체계적인 접근이 아쉬웠던 순간들이다. 친한 친구들은 다 늙어서 유학은 웬 유학이냐며 유학 경비를 자기들에게 주면 평생 술을 사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친구들 말이 액땜이 되었나 보다. 운이 좋아 TOEFL과 GMAT점수도 괜찮았고 제출했던 에세이도 입학사정 위원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는지 1994년 7월에 보스턴으로 떠날 수 있었다.

지원 주비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점은, 일단 학교를 정하면 최근 그 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사람들과 만나 입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찾아낸 다음 그에 따라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학교마다 입학 사정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학교마다 학업 수행 능력, 실무 경험 및 직장 경력, 가정 환경, 과외 및 사회 봉사 활동 등에 대한 가중치가 많이 다르다. 따라서 지원자는 응시 시점부터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특히 에세이에서는 합리적이고 자신있는 모습을 호소력 있게 부각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 바로 MBA 1년차 였다. 영어 구사 능력에 대한 회의, 수업 참여도 및 공헌도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학점 제도, 많은 과제가 그룹 단위로 주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다양한 급우들과의 각종 미팅 및 강요된 공헌, 한국인으로서 뒤처질 수 없다는 자존심 등으로 거의 매일 생존 투쟁을 벌였다. 수없는 좌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같이 간 가족들의 문제를 걱정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뒤늦은 인사지만 잘 믿고 따라 준 가족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급우 중에는 이 정도 노력을 들이면 못 할 일이 없다며 스스로 학교를 떠나는 경우도 5% 정도 되었다. 세계적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에 따르면, MBA들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에는 비즈니스 스쿨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점도 있다고 한다.

3학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가끔 골프도 치고 한인회 모임에도 참석하고 여행도 다닐 수 있었다. 한인 2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밤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한국의 문화·역사 및 전통에 관해 세계 각국의 친구들에게 알린 일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자랑스럽다. 마지막 학기에는 배우고 싶은 과목이 너무 많아 아쉬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특히 M&A 및 ITBT(Information Technology and Business Transformation)를 학습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는 졸업 후 실제 업무 수행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3학기에 접어들면서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MBA가 희망찬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고민의 정도도 심했다. 학교 내 분위기는 컨설팅 회사와 투자 은행으로 대별되고 있었다. 가까이 지내던 형 K는 소르트웨어 개발 회사의 동업을 제안했고, 한국 내 친구들도 무역 회사나 벤처 기업을 창업할 것을 권했다. 유명 컨설팅 회사, 세계적인 제조 업체, 한국 대기업들 사이에서 수업이 갈등을 거듭했다. 미국 현지에서의 근무는 고려하지 않았다. 현지 근무가 영어 실력 향상이나 경력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결국 한국에서 생활을 할 계획이라면 공백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대안별로 장단점을 분석해 보아도 적절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 나이와 과거 금융 기관 근무 경력, 향후 담당하고자 하는 직무, 장기적인 적응도 등을 감안하여 국내 기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양인으로서 외국 기업에서 자리를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국내 기업을 선정할 땐느 미래 성장성, 수익성, CEO의 경영 철학, 금융 부문에 대한 집중도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당시 1년간 공부하러 보스턴에 와 계셨던 동양그룹 C사장님의 충고와 현재현 회장님과의 개인 면담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내 결심은 점점 굳어 갔다. MBA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인정, 합리적인 그룹 경영, 그리고 금융업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전략적 마인드 등 현 회장님에 매료된 나는 S그룹과 L그룹 행을 포기하고 1996년 8월 1일부터 동양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담당 업무는 그룹 차원의 경영 전략 개발과 실행이었다. 나는 우선 25개 계열사의 경영 성과 평가, 임원 업적 평가 및 보상 체계 확립, 기업 가치 극대화를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등에 심혈을 기울였다. MBA 시절 전략(Strategy) 수업과 인수 합병(M&A) 시간에 배웠던 내용은 업무 수행에 그대로 도움이 되었다. 특히 사업별 산업별 현재 위치 분석, 핵심 역량, 경쟁 우위 파악 및 평가, 각종 기업 가치 평가 도구의 적절한 사용, 전략 기획 과정, 그룹 차원에서의 사업별 기능별 전략의 통합, 목표 달성을 위한 실행 계획의 작성 및 실행 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IMF 체제 이후, 회사가 적극적으로 외자 유치에 나서게 되면서 나 역시 더욱 분주해졌다. 매각 대상 기업 및 토지에 대한 정보 비망록 작성, 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 할인 방식으로 산출한 기업 가치에 근거한 매매 가격 산정 및 협상 등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을 통한 리스트럭처링이 내가 맡은 일이다. 물론 MBA 과정에서 경험했던 외국인들의 문화 및 협상 전략, 가격 산정 방식 등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한편 국내의 각종 법 제도 및 기업 문화가 원활한 구조 조정이나 인수, 합병을 효율적으로 이루어 내기에는 갈길이 멀다는 점도 아쉽다.

 

K은행 인사부에 근무하던 20대 후반 시절이 다시 머리에 떠오른다. 당시 MBA 특채를 놓고 선배들과 갑론을박했다. 논거는 MBA가 국내 기업에 어떤 특별한 가치를 창출하느냐는 점이었다. 현장 근무 경력이 많은 직원이 미국 유학 2년 다녀온 사람보다 훨씬 공헌도가 크며, 실제 나타난 업적의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다국적 기업의 경영 전략, 선진화된 인사 관리 제도, 정밀한 경영 시스템, 정보 기술에 대한 투자 등에 대한 이해 및 적용이 과연 국내 기업의 성장과 수익성 제고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는 회의를 갖고 있었다.

상황은 급변하여 이른바 국제적 경쟁 시대를 맞이하였고 아시아적 경영 패러다임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시대에 적응하여 과감히 변신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으며, 인적 자원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새로운 경영 지식과 기술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패러다임하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MBA들이 갖는 가치는 앞으로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물론 주의할 점이 있다. 즉 남이 하니까 한다는 수동적인 학습 자세, 학위에만 의미를 두어 다소 등급이 낮은 학교에서라도 쉽게 학위를 따겠다는 태도, 적당주의는 배척해야 한다. 부단한 자기 개발 노력이 뒷받치되지 않는 한 MBA 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최근에 유학을 떠난 후배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들의 TOEFL, GMAT 점수가 매우 높다는 점과 수학할 학교의 교과 과정, 향후 나아갈 길에 대해 명확한 인식 및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 경제의 붕괴 이후 한국 학생들이 최우수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할 기회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졸업후의 경쟁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투자 은행이나 컨설팅 회사에서의 한국 학생 수요가 매년 20명 이내인 점을 감안할 때 한국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이나 국내 기업 중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동양그룹에 입사한 지 3개월만인 1996년 11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내 MBA 채용 과정에 참여하여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지역적인 특성, 각 경영대학원별 교과 과정, 입학 사정 기준의 차이 및 경쟁력 있는 분야, 한국 학생에 대한 선호도, 지역별 한국 학생의 학습 자세 및 생활 환경 등에 대해 많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한국 학생이 많은 학교의 경우 영어 실력 향상 속도가 느린 대신 향후 진출할 부문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투자 은행이나 컨설팅 회사로의 진출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미국에서 직장을 갖는다는 것도 비자 문제나 회사측의 스폰서 문제 등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마지막 학기가 되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지역적인 연고로 근처의 미국 회사들에 취업할 수는 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 권장할 만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보다는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이나 자신이 적응 가능한 한국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후배들 중 졸업 후 미국에서 직장을 잡은 대부분의 후배들은 미국에서 1년 근무한 후 한국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물론 영어 능력이 탁월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마케팅에 강한 몇몇 후배들은 현재 미국과 영국에서 유수의 컨설팅 회사, 투자 은행, 제조 회사, 벤처 기업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결국 영어 구사 능력이 최대의 관건인 셈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 적극적인 자기 자신의 마케팅과 목표로 하는 회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그 회사의 최고 경영진과의 관계 유지 등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참고로, 주요 국내 대기업들은 주로 한인 학생회를 활용하여 해외 인력을 구하고 있으며, 그룹 홈페이지와 현지 신문을 통해 채용 일정과 방식을 공지하고 있다. 또한 현지 채용팀이 미국 내 주요 대학을 순회하며 설명회나 연회를 마련하여 참가자들의 이력서를 접수하고, 이 데이터 베이스를 계열사들에 배포한 후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는 IMF 이후에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으나 그룹 및 계열사에 따라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경제의 붕괴와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팍스루소-아메리카나의 부활, 지역 및 산업을 초월한 메가 머져, 글로벌 스탠다드의 대두 등으로 세계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과감하고 합리적인 구조 조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도 암울할 뿐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에 대한 파악, 정보 기술의 발전에 대한 이해, 다양한 경영 사례 분석을 통해 기업 위기의 탈출 및 재도약 전략 등을 직접 접하고 배운 인재들과 이들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MBA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며 이에 따른 MBA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부단한 노력으로 한국 경제 재도약의 견인차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재 진
Class of 1997 CMU(Carnegie Mellon University)  
SAP Korea 근무

 

그 학교에 가면 매일 밤 수도꼭지 붙잡고 운다더라... 지난 10년간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항목들, 이를테면 '고된 학업(Hardest Working)', '최고의 MIS(Best MIS)', 'Computer Oriented School' 등이 표현들은 카네기 멜런 대학의 MBA(GSIA: Graduate School of Industrial Administration) 과정이 얼마나 힘든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카네기 멜런 대학의 MBA 과정을 마친 지금 되짚어보더라도 그 표현 하나하나가 틀린 것은 아닌 듯싶다. 많은 MBA 지원자들이 좀더 편하게 공부하고, 쉽게 영어를 익히고 싶다는 욕심을 낸다. 그러나 역시 공부에는 왕도가 없는 법. 오히려 같은 경비를 들여 공부를 해야 한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남보다 더 많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유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보면 말이다.

1992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전공인 농학과는 거리가 먼 갑을섬유 무역주식회사에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근무 여건에 특별한 불만은 없었으나 경영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다는 사실이 내겐 일종의 자격지심이었다. 하루하루 판에 박힌 업무를 반복해 가며 점차 무사안일에 빠져들던 나는 새로운 자극을 받기 위해 1993년 가을, 모교인 고려대학교 야간 경영대학원을 다니며 주경야독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 내가 처음으로 접한 마케팅(Marketing)의 맛은 좀더 체계화된 지식을 얻기 위한 외국 유학의 꿈으로 커져 갔다. 1994년 가을, 회사와 학교를 모두 그만두고 본격적인 유학 준비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회사와 학교를 너무 일찍 그만둔 것은 아니었나 싶다.

1995년 초, GMAT과 TOEFL 시험을 틈틈히 준비하면서 지원했던 몇몇 학교들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합격 통지서를 받은 학교는 뉴욕대(NYU)와 로체스터(Rochester), 그리고 카네기 멜런(Carnegie Mellon University, 이하 CMU)이었다.

이미 각 학교에 대한 명성을 들었던 터라 그 당시 학교 순위가 비슷한 NYU와 CMU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다. 결국 학교 주변의 안전과 공부에 대한 욕심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CMU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CMU가 있는 피츠버그(Pittsburgh)는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안전하다고 알려진 도시이다. 학교 주변이나 시내 모두 새벽이 되어도 그다시 위험한 일은 발생하지 않느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그룹 미팅 시간을 밤 12시로 정하기도 한다. 물론 서로 바빠서 늦은 시간이 아니고는 약속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CMU MBA 과정은 거의 모든 수업마다 그룹이 짜인다. 보통 한 학생이 5, 6개 과목을 수강하니 한 학생이 속한 그룹이 5, 6개가 되는 셈이다. 이 때 적어도 한 그룹은 최소한 주 1, 2회 모임을 가지므로 서로의 스케줄을 맞추다 보면 주말과 야간에 미팅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 그룹에도 과제가 주어지는데 개인 과제물과 그룹 과제물은 모두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교수가 직접 그룹을 만들어 주지만 후에는 각자가 알아서 팀을 짜야 하며, 자기 자신을 알리기 위해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CMU의 학생들은 개인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룹 활동을 통해 다양한 학생들과 접할 수 있으니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영어 실력도 급속도로 향상될 수 있다. 이런 영향으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현지에서 인턴이나 전임직(Full-Time)으로 취업을 하는 학국 학생 수도 점점 늘어나느 추세이다. 1997년 졸업자의 경우, 회사의 지원을 받고 유학 온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 중 다섯 명이 미국 현지의 유수 기업에 채용되었다.

한 학년의 전체 학생 수는 2백 50명. 이 중 외국 학생의 비율은 약 50%로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일본 학생은 전체의 약 10%를 차지하며, 한국인의 경우, 1995년 이전은 입학생이 불과 한두 명에 그쳤으나 이후에는 거의 5%수준인 10명을 유지하고 있다.

CMU의 특징은 바로 미니 시메스터(Mini Semester) 제도이다. 1년에 총 6학기(여름 2학기 포함)가 실시되는 이 제도는 일단 필요한 학점만 받으면 조기 졸업도 가능하다. 미니 시메스터 제도는 일반적인 학기 제도를 둘로 나눈 것이다. 혹시 강의의 질이 떨어질까 의구심도 생기겠지만, 실제로는 이 제도 때문에 CMU에서의 학업은 매우 고되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CMU 교과 과정의 또 다른 특징은 보통 졸업시 2, 3개의 전공 분야 (Major Field)를 가지게 된 다는 점이다. 이 역시 미니 시메스터 제도 덕분이다. 한 미니(Mini)당 최대 6과목을 수강할 수 있으며, 졸업시 전공 분야로 인정하는 기준인 각 Field당 선택 3과목은 쉽게 넘어선다. 그만큼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처음 두 미니(6개월)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군대의 훈련소쯤 될까? 평균 수면 시간은 약 4, 5시간이고 쌓이는 과제물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기간의 빡빡한 일정도 세 번째 미니 이후에는 조금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공부가 적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훈련으로 적응이 되어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MBA 과정은 다양한 '넓이'를 중시하지만 CMU는 넓이와 상당한 수준의 '깊이'를 같이 추구하는 곳이다. 또한 데이터 프로세싱(Data Processing), 분석및 적분법은 모든 과목을 이수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과목에서 컴퓨터를 이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짜는 등 정보 분석에 있어서 CMU는 최고임을 자랑한다.

CMU MBA의 명성은 실제로 MIS 전공자만이 아닌, 모든 분야의 전공자들이 기본적으로 탁월한 정보 분석 능력을 쌓아갈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CMU MBA 과정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필수 과목인 '게임(Game)'.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학생들이 가상의 회사를 설립, 운영하고 그 경영 성과에 따라 능력이 평가되는 수업으로 학생들이 투포로 20~30명의 사장을 선출한다. 이 때 사장들은 자유로이 나머지 학생들과 접촉하여 자신의 스태프를 정해진 수만큼 채용할 수 있다. 게임 총기간은 약 6개월이며, 그 기간 동안 두 회계연도를 운영한다.

실제 미국의 회사 운영 방식을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재현시켜 놓은 '게임' 수업은 강의 없이 CMU 동문들의 감독하에 진행된다. 컨설턴트 및 대기업의 간부들인 이들 동문들이 주주가 되어 매 사이버 분기마다 주주 총회를 실시, 결과를 평가하고 다음 분기의 예산 집행을 허가한다. 게임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열의는 실로 대단해서 어떤 때는 오후 5시에 시작된 줒 총회가 새벽 3~4시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CMU의 졸업생들은 학교가 기업 밀집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미국 내 리쿠르터들에게 인기가 있다. 나는 1996년 여름, 산업 마케팅(Industrial Marketing)으로 유명한 전 세계 최대의 중장비 기업 캐터필라(Caterpillar Inc.)미국 본사에서 서머 인턴을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기는 했지만 졸업 후 그 회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싱가포르의 아시아 본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CMU MBA 과정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 평균 7만 달러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입학 전과 후의 연봉 격차를 따져 본다면 거의 두 배나 많은 셈이다. 2년간의 부가가치 면에서는 아마도 1위가 될 것이다.

피츠버그에는 김치나 라면 같은 한국산 생필품이 다른 대도시에 비해 비싼 편이다. 단 아파트 임대료는 싼 편인데 약 5백~7백 달러 수준이면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빌릴 수 있다. 문화 시설로 Andy Warhall Museum과 Carnegie Institute History Museum등이 있으나 실질적으로 CMU MBA 학생의 경우 시간이 없어서 가볼 기회는 적고 한국에서 친지분들이 오셨을 때에는 추천할 만하다.

주변은 구릉 지대라 비교적 한국인에게 친근한 지형이며 가까운 곳에 한두 개의 시설 좋은 공원도 있다. 서너 개의 한인 식당과 우리말을 잘 하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은 한국이 그리운 학생들에게 위안이 된다

 

손 혁
Class of 1996  AGSIM (THUNDERBIRD)  
ALLIED SIGNAL AEROSPACE 근무

 

'I'm not an Athenian or Greek, but a citizen of the world.'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지 벌써 2년 반이나 됐지만, 학교 정문에 새겨진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아직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나는 세계 시민으로 살고 있는가?

T-BIRD MBA의 시작과 끝은 '국기 의식(FLAG CEREMONY)'이라는 전통 깊은 행사로 장식된다. 입학식에 해당하는 신입생 환영회는 30여 개국에서 온 학생들 중 한명이 자기 나라의 국기를 들고 입장하여, 자기 나라 소개와 입학 소감, 학교 생활의 기대를 말하는 것으로 새직한다.

졸업식은 역시, 국가별로 한 명이 대표로 나와 졸업 후의 포부, MBA 과정을 밟으면서 느꼈던 점, 그리고 교수님이나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나는 운 좋게 MBA의 시작과 끝을 태극기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떨결에 잡은 기회지만 혹시 그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너는 지금부터 세계시민이다.'

T-BIRD는 국제 경영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 경영 부문(World Business Department)외에도, 국제학 부문(International Studies)과 외국어 부문(Modern Language)등이 단순히 과목으로 개설돼 있지 않고 별도의 학과(Department)로 돼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국제 경영학의 바탕이 되는 세계 각 지역의 문화와 정치, 사회 및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학생들에게 체례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하고, 특히 시시각각 변하는 현지 정보와 상황을 빠르게 국제 경영학에 필요한 이론과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세 학과를 필수 과목으로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어려움도 있다. MBA 과정에 들어와 두 가지의 고생을 덤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경영학 성적이 좋아도 국제학이나 외국어 실력이 없으면 졸업이 불가능하다. 물론, 외국 국적의 학생은 외국어 부문 필수 이수 과목을 면제받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부담 외에 별도의 부담은 느끼지는 않으나 미국 학생의 경우는 다른다.

예를 들어, 아시아 지역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은 중국어나 일본어 중 하나를 중급 수준 이상 해야 하는데, MBA의 과목들을 이수하면서 동시에 졸업 때까지 일어나 중국어를 현지인과의 비지니스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외국어 때문에 MBA 과정을 포기하는 미국인 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중국어를 선택해서 사서 고생을 했다. 과제가 책 두 권을 한 학기 동안 통째로 외우는 것이었다. 외국어 수업은 다른 과목과는 다르게 매일 있다. 이것이 경영학 과목 중간 고사나 기말고사와 겹쳐도 수업이 면제되지 않는다. Modern Language 과목도 마지막 시험은 최근 그 지역의 경영 이슈에 대해 그 나라 말로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이다. 미국 학생이든 외국 학생이든 똑같이 언어에 대한 핸디캡을 가지고 MBA 과정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학제상의 특징 덕분에 유학생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남다르다. 교수들은 학생들을 케이스 스터디 그룹을 만들 때, 각 대륙에서 온 학생들이 골고루 끼도록 배려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일할 때 무엇보다 먼저 각 지역 책임자를 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스터디 그룹의 일원이 될 때 미국인 학생들에게 중국, 일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차이에 - 이 때 미국의 역사가 세 자리 수인 200년임을 자연스럽게 강조하면 아무리 건방진 친구라도 한수 접고 들어온다 - 대해 설명을 해주면 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 물론 영어 표현이나 미국 문화, 비즈니스 관행에 대해서는 미국 학생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동양 학생과 미국 학생이 진정 서로 필요한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학교의 과외 활동도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학교측에서는 서로 관심 있는 나라의 학생들이 룸메이트가 되도록 배려해 주며, 연말이나 추수 감사절 때에는 미국인 가정과의 자매 결연을 맺어 미국 가정에서 생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T-BIRD에는 Korea Club, China Club, Brazil Club 등 각 나라의 Country Club이 존재한다. 이 클럽들은 각국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싶은 학생들로 구서오디며, 매학기 마다 'Asian Night' 등을 통하여 그 나라의 고유 음식, 춤, 의상 등의 전통 행사를 소개 한다.

이러한 클럽 활동을 통해 알게 된 학생들은 졸업 후에 비즈니스 파트너로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Korea Club의 행사는 과거에 LA 주재 한국 총영사가 축사를 해줄 정도의 대표적인 행사였다. 필자가 MBA과정을 밟는 동안에도 태권도 시범, 부채춤, 한국 관련 비디오 상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나는 MBA 과정을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배운 것을 현지에서 활용해 보려고 'Foreign Program'에 참여했다. 실제 이론과 현장에서 국제 경영학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가장 보람있는 시간 중의 하나였다.

T-BIRD는 대륙별로 한두 개 정도의 Foreign Campus나 Join Program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유럽과 관련된 사업을 하려는 학생들은 스위스의 T-BIRD 캠퍼스에서 담당교수와 함께 유럽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과 WTO 등의 국제 기구 방문 및 조사 등의 공동 작업을 통하여 유럽 통합으로 인한 경영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T-BIRD 중국 캠퍼스를 선택하여 한 학기 동안 베이징과 상항이에서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진출 현황과 기술 이전 및 직접 투자에 관한 공부를 했다.

상하이에서는 상하이 재경대학 대학원생들과, 베이징에서는 베이징 대외경제 무역대학 대학원생들과 같이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상하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대부분 T-BIRD 졸업생들이 책임자로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및 중국 국영 기업체의 기업체 방문, 공장 견학 등의 시간을 가졌다.

당시 모토로라, 보잉, 맥도널 더글라스, J&J, 바이엘, 이토츄 상사, 아더 앤더슨, 중국 국영 인민공장, 상하이 공상은행 드으이 방문을 통하여, 이론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들과 실제 경영 활동이 얼마나 큰 괴리를 가지는지 절실히 깨달았고, 진정한 다국적 기업들의 경영 노하우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특히 향후 중국 시장과 미국의 자본 및 기술이 결합할 때 우리 나라에 얼마나 가공할 만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하여 느낄 수 있었다.

IMF 영향 탓인지 요즘에는 MBA 과정을 밟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을 많은 것 같다. 사실,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있고,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금전적으로 확실히 도움이 되며 취업 정보도 접할 수 있다.

나는 처음 도서관 운반 보조에서 교수 연구 보조까지 블루 칼라에서 화이트 칼라로 직군을 옮겨가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제 2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 외국에 있는 T-BIRD 캠퍼스 선택, 인턴십, 이력서 작성, 인터뷰 요령 등에 관하여 많은 친구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인턴십의 경우를 보자. 친구들은 졸업 후 유학생 입장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려면 미국내의 직장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게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이력서 작성, 인터뷰 요령, 인터뷰 대상 기업의 사전 조사 등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하나씩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후에 직장을 구하는 데 정말로 큰 힘이 되었다.

중국 캠퍼스에 가기 직전, 몇 번의 인터뷰 끝에 미국 현지의 한 기업체에서 인턴십 제의를 받았다. 중국 캠퍼스에서 한 학기를 보낸 뒤에 본격적인 인턴십을 시작했다. 이 인턴십은 외국 기업 근무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Business School is business'란 말이 있다. MBA 과정을 하면 졸업 후에투자한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직장을 잡아야만 그 의미가 있다.

나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인턴십하랴, 교수의 연구 보조원 노릇하랴, 직장 구하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사실 졸업 한 학기 전부터 취업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나의 경우 T-BIRD 중국 캠퍼스를 다녀와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중국을 가기 전에 미리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주요 기업에 보낸 것이 그나마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세 가지의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학구이나 중국, 동남 아시아 등 다국적 기업이 진출해 있거나 진출 예정인 지역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미국 기업에 현지 채용되는 것, 마지막으로 유학생을 대상으로하는 아시안 잡(Job) 포럼이나, 국내 대기업의 개별 공채를 통하여 입사하는 방법이었다.

졸업 후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므로,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노려야만 했다.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은 세 번째였다. 그래서 한글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준비하고, 한국 개별 기업의 취업 정보를 수시로 확보하기 위하여 미주판 한국 신문을 정기 구독하였다.

T-BIRD의 장점을 잘 이해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대부분 가을 학기 졸업생을 선호한다. 교육 기간이나 현지 파견을 위한 사전 준비에 필요한 시간 확보 차원에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평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이 인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 담당할 직무를 바탕으로 책임과 권한을 설정하여 그 자리에 적합한 최적의 인재를 구한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의 경우 역점을 두는 시장이 남미냐, 중국이냐, 러시아냐에 따라 기본적인 이터뷰 대상 폭이 결정된다.

한 친구는 MBA 과정을 하면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했고, 서울에서 인턴십을 했으며 현재 국무성에서 아시아 통상 문제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이미 MBA를 시작하기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한 성과인 것이다.

나의 경우, 아시아 시장에서의 직장 경험, 미국의 인턴십, T-BIRD 중국 캠퍼스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가능성이 있는 포지션이 공고된 기업은 가능한 모두 대상으로 했다. 처음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작업들이 시간이 갈수록 1차 전화 인터뷰 및 학교의 직업 알선 센터를 통한 2차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9월부터 12월 석 달 동안 피 말리는 1차, 2차, 3차 인터뷰를 위해 비행기를 40번이 넘게 타야 했다. 중간 고사 마지막 시험을 보고, 그 날 저녁 디트로이트에서 아침에 인터뷰를 하고, 다시 시차를 활요하여 LA로 와서 오후에 인터뷰를 하는 극성을 부린 덕분에 네 군데의 다국적 기업과 미국 현지 기업 5군데, 국내 기업 5군데에서 제의를 받았다.
"네 명함에는 새가 세 마리나 살고 있구나."

미국 친구 하나가 내 명함을 들여다보고 웃곤 했다. 내 이름의 HAWK, 학교 이름의 T-BIRD, 학교 주소인 PHOENIX 때문이었다. 이럴 때면 나는 "아마 항공 산업 분야에서 일하려고 그렇지 뭐" 하고 대꾸하곤 했는데 말이 씨가 된다더니, 졸업 직전 일을 시작한 회사는 ALLIED SIGNAL이란 항공기 엔진 및 부품 제작 회사였다.

MBA는 많은 비용(특히 기회 비용을 고려할 때)과 노력을 감안하면 그다지 큰 장점이 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MBA 과정에 입학하기 전에 얼마나 충실히 준비했느냐에 따라 이미 어느 정도 본인의 진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MBA는 하나의 재교육 과정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MBA 과정을 밟는 미국 학생들 중에 나이가 30~40대가 많고, MBA 과정 입학시에도 직장 경력이 중시되는 이유는 MBA가 비지니스의 전문성을 보완해 주는 교육 훈련 과정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충분한 준비 기간과 여유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충분히 향유하는 이들 나이 많은 미국 학생들이 무척 부러웠다.

유학생들은 나름대로 몇 가지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언어나 비요에 관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구체적인 방향성의 상실이 문제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비즈니스 스쿨을 선택할 때 학교의 특성을 살피기보다는 랭킹에 의존하기 쉽다.

그 학교가 본인의 진로에 얼마나 적합한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남들이 뭐라고 평가하는지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한다. 몇몇 화려한 성공 사례만 생각하지, 자신에 적합한 구체적인 접근 방법은 잘 모르

기도 한다.

이제 MBA의 희소성에 따른 혜택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그 많은 MBA 중에 확실한 자기만의 차별성과 전문성만이 유일한 생존 조건이 된 것이다.

당여한 이야기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MBA는 자격증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교한 업무 스킬, 폭넓은 시야, 다양한 경험을 뒤로 하고, 바로 앞사람의 구두 뒤축만 보고 열심히 걸어다니다가 끝없는

소모전에서 바져나올 수 없다.

글로벌 시대의 무한 경쟁 시대의 최선봉에 서야 될 사람들이 바로 MBA들일 수 있다. 폭넓은 시야와 세련된 국제 감각으로 세계 시민의 당당한 한 축을 이룬 MBA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단국대학교정책경영대학원
글쓴이 : 최주만 원글보기
메모 :